'복세편살'하고 싶었다!
'복세편살'하고 싶었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1.07.01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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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탐방기] 1회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오랜만에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다. 제목은 거창하게도 ‘인생 탐방기’. 오늘 1회로 문을 여는 이 시리즈는 그동안 영화제 탐방기에서 하지 못한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담길 예정이다. 두 시리즈를 오가면서 생기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각 주제에서 더 전문적인 글을 쓰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포부로 기획했다. 첫 삽을 뜨는 시공식에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너른 마음으로 지켜봐주시기 바란다.

 

ⓒ위클리서울/ 정다은기자
ⓒ위클리서울/ 정다은기자

새로운 방주가 필요하다

처음 이 기획을 떠올린 날로 돌아가 보자. 그날 나는 먼지가 내려앉은 책상에 앉아 한참동안 업데이트가 되지 못한 노트북을 펼쳤다. 한 달 만에 영화제 탐방기 원고 파일을 열고 몇 문장을 적었더니, 그동안 일어난 일들이 자꾸만 끼어들어 글이 휘청거린다. 영화제 탐방기에서는 영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최근에 느낀 감정과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심지어 영화제 탐방기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의 이야기다.) 글을 죄다 지우고 새로 쓰기를 몇 번째, 갑자기 파랗던 하늘이 하얗게 질려 엄청난 비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창문과 거리가 있는 책상에까지 빗물이 튈 정도다. 갑작스런 폭우를 멍하니 바라보다 새로운 탐방기를 쓸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말끔히 청소된 세상을 둥둥 떠다니던 노아의 방주처럼, 지금 내 글쓰기 토양에는 새로운 방주가 필요하다. 그래야 깊은 물에 잠기지 않을 수 있다.

고민 끝에 쓰는 이 글에서도 고민은 계속 된다. 독자들은 나를 모르고, 최근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만 설명해도 내 인생 전부를 주석으로 달아야 그나마 전달이 될 것 같다. 혹 ‘복세편살’이라는 줄임말을 아는가. 복잡한 세상을 편하게 살자는 뜻인데, 요즘 내 인생은 정말로 복잡했다. 내 자아와 일상을 배제하고 써야 하는 특정 소재의 글, 그러니까 영화제 탐방기를 쓰지 못한 이유다. 지난 서울독립영화제 2편도 한 달 만에 꾸역꾸역 써냈고, 결과물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쓴 글들은 매번 그렇다. 글을 쓰고 발송할 때까지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기사로 올라온 뒤에는 얼굴이 화끈거려 밤잠을 설친다. 내 글을 보게 될 사람들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 사족이 늘고, 쓸 데 없는 말이 잔뜩 들어간 글은 또다시 엉망이 되어 밤잠을 앗아간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복잡한 마음을 솔직하게 적어 마침내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시리즈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복세편살 시리즈?

정말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매번 나에게 들이닥치는 일들과 피어나는 고민의 종류가 다양하니, 시리즈의 성격을 좁히는 이름은 안 된다. 하나 고집하고 싶은 것은 ‘탐방기’다. 영화제 탐방기가 본업이므로 이 정체성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 무엇보다 영화제 탐방기의 어느 글에서 이야기했듯, 결국 모든 탐방은 나에게서 출발해 나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난다. 탐방이야말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내 일상과 고민 전부를 담아낼 좋은 단어다. 그렇지만 ‘자아 탐방기’, ‘김혜영 탐방기’ 따위의 이름은 무슨 내용인지 와 닿지 않을뿐더러 너무 부끄럽다. 그러니 ‘인생’으로 퉁치는 것은 어떨까. 솔직한 에세이와 과장된 소설 사이 어디엔가 있는 일상적인 글, 내용은 일기인데 형식은 시처럼 자유로운 글, 다른 이의 인생을 탐방하는 인터뷰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새로운 시리즈의 이름은 ‘인생 탐방기’다. 영화제 탐방기를 쓸 수 없는 날에는 이 새로운 방주에 올라타 인생에 대한 고민과 사연을 잔뜩 풀어놓으려 한다. 그럼 흠뻑 젖는 일만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위클리서울/ 정다은기자
ⓒ위클리서울/ 정다은기자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드디어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게 된 이유는 끝이 났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로 인해 복잡해졌다고 했으니, 그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게 도리이지 않을까. 후. 숨을 가다듬고, 다시 하나씩 이야기해보련다. 시작은 코로나다. 코로나가 출범한 20년도에 나는 대학원 입시를 시작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00생들은 다 알겠지만, 안 그래도 불안하고 힘겨운 수험생에게 코로나는 그나마 있었던 탈출구마저 모두 막아버린 재앙이다. 먼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도서관은 운영 시간과 좌석을 줄이고, 그마저도 내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도서관이 지칠 때 또 다른 선택지가 되어주었던 카페는 1시간의 제한이 생겼고, 체력을 단련하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운동 강습장은 무기한 문을 닫았다. 가끔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동아리 모임과 친구들과의 만남도 어려워졌다. 대학원을 준비하던 20년도의 나는 말 그대로 방 안에 갇혀버렸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기와 탐방기를 쓰는 게 익숙했던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있기에 불평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근 내 상태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코로나가 있다.

그로부터 1년 뒤, 힘든 입시를 거쳐 입학했지만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입학식과 OT는커녕 학교 캠퍼스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교수님이나 함께 공부할 동기를 만나지도 못했고, 수업을 들으면서도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늘어나는 학자금 대출만큼의 보람과 성장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하고 기다려도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 그때 마음 한구석에서 곰팡이가 피어났다. 열심히 닦아도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방 밖의 세상이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규칙적인 외출, 혼자가 아닌 팀이 꾸려가는 프로젝트, 궁핍을 면하게 해줄 월급이 필요했고, 그건 모두 ‘입사(入社)’라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직장인이 되는 건 당연히 대학원 졸업 이후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학생이 학교를 갈 수 없으니, 대신 직장에라도 가고 싶었다. 정말로 외출과 사회생활이 절실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시간이 자유로운 온라인 수업의 장점을 이용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0일 동안 자원봉사를 하며 작은 실험을 해보았다. 근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수업을 듣는 일이 고되고 피곤했지만, 혼자 방구석에 있을 때보다 확실하게 행복했다. 마음고생보다 몸 고생이 낫다는 확신으로 여러 영화제에 본격적으로 지원서를 돌렸고, 그중 가장 빠르게 합격을 시켜준 영화제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 기자이자, 대학원생이자, 영화제 스태프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N개의 직업을 갖는 90년대 생이 바로 내 이야기였고, 의도치 않았지만 치열하고 성실한 삶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에필로그

여기까지가 지난 20년도부터 21년 5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이제 왜 내가 복잡한 상태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중 1부가 마무리되었고, 2부는 다음 인생 탐방기 2회에서 이어갈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전 국민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요즘,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하고 진단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이 여정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세상이 멈추었으니, 우리도 걸음을 멈춰 숨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인생 탐방이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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