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불평등’ 사회적 약자에 한국교회 한목소리 낼 때”
“‘코로나 불평등’ 사회적 약자에 한국교회 한목소리 낼 때”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1.03.19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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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민주화된 사회에서 교회 모습도 바뀌지 않겠나.

▲ 민주사회에 대한 경험으로 등장하는 민주적 교회 구조에 대한 요구도 교회에 생겨났다.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이런 요구는 섬김과 변혁적 리더십을 기대하게 되었고, 관계적 리더십도 등장했다. 사회와 문화의 변화가 교회의 변화를 요청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면이 한편으로는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교회가 한발 앞서서 사회에 좋은 기여를 하는 모습이 아닌 것에서는 아쉬운 면도 있다. 앞으로는 교회가 민주공화국의 나라에 있는 시민으로서 민주성과 공화적인 모습을 더욱 잘 갖추면 좋겠다. 능력주의와 서열화 그리고 무한경쟁에 대한 문제는 교회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다. 사회문제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고착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 사회 속에 만연한 능력주의와 서열화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바람이 있다면 교회가 생태적인 관점을 가지고 우애와 연대를 실현해 가면서 공정과 공유, 공화, 공존의 가치를 실천적으로 살아내는 과정을 통해 사회에 영향을 주는 모습이면 좋겠다.

 

- 불평등 불공정 문제도 교회가 다뤄야 할 과제다.

▲ 아직 한국교회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팬데믹이 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화 됐다. 돈 많은 사람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더 가난해진다. 이렇게 쫓겨난 이들의 현장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지난해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아시아나 케이오와 이스터항공 노동자, LG 청소노동자들 문제를 보면 함께 공존을 위한 모습이기보다는 기득권과 부유층은 자신의 지위와 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위기와 위험으로 내모는 것을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제일 약한 곳에 있는 이들이 제일 먼저 고통당해야 하는 현실에 대하여 교회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곳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행동이 필요하다.

 

- 변화보다 성장의 덫에 갇히지 않았나.

▲ 일반사회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따라 무한경쟁과 능력주의로 내몰릴 때 교회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했다. 교회는 함께 살아가며 ‘우애와 우정’을 나누는 하나의 공동체이자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가치를 시민사회에 알려주어야 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를 공정하게 변화시키는 사회적 소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게 변화를 힘쓰는 교회의 노력은 항상 작기만 하고 세상의 가치에 휘말려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눈앞의 성장만을 추구한 교회는 도래할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지 생각이 부족했다. 젊은 세대는 떠나고, 신뢰는 바닥이다. 그럼에도 변화와 개혁의 소리보다는 여전히 이기적인 성장만을 고집하는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이 크다.

 

- 교회의 노동인권 등 정치 참여도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과 코로나 시기에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중요하다. 어떻게 보나.

▲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억울하게 생명을 약탈당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이 있다. 또 한 관심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다. 이런 사람들과 부조리에 대해 기독교적인 외침이 필요하다. 세상이 불공정해지고 불균형해질 때, 교회는 바르고 공평한 길로 가야 한다. 일단 1차 적으로 법과 구조를 만들어내는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공정한 법과 구조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올바른 정보를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법과 구조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 안에 함께하는 모두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끌어 올리지 않는다면 법과 구조의 약점을 따라 다시 불공정한 길에 설 수도 있다. 구조의 틈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우애, 신뢰로 막아내야 한다. 서로의 생명과 권리를 서로가 지켜 주어야 한다. 이런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바로 예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은가.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넘어서서 배운 대로 사는 모습이면 좋겠다.

 

- 법보다 공정과 생명이 중요하다는 지적인데.

▲ 법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법과 규정이 없어도 약자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문화가 당연해야 하고, 이런 일을 기독교인이 앞장서야 한다. 한 생명과 그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환경의 문제에 대해서 나서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정치든 교회든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정말 실효성 있는 대안들이 나와야 한다. 때로는 현장에 적용되는 데에 턱없이 부족한 법을 만들었을지라도 우리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고민과 실천이 있다면 좋겠다.

 

- 비상한 시기에 교회의 사회적 참여와 변혁이 시대적 과제다. 또 ‘코로나 언택트’ 시대에 다시 한번 교회가 국가와 사회 발전의 초석으로 가는 전환기라 본다. 국민 결집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다면.

▲ 1947년에 발표한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57년 ‘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페스트’ 소설이 있다. 소설에는 페스트(Pest, 14세기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가 한마을에 창궐하면서 사람들이 마을에 갇히고 지역이 봉쇄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무조건 문제를 회피하려는 부류, 그저 신에게 의탁하고 신의 뜻이라고 하는 부류, 그리고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부류다. 지금 한국교회나 사회도 이 세 가지 중 어디쯤에 속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 년이 넘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보내며 우리는 알게 된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위기를 해결하고 함께 극복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 때론 적극적 참여도 필요하며, 서로 다양한 모습으로 양보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뼈아픈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은 코로나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쓰지 않아야 하고, 일반 시민들도 가짜뉴스를 만들지 말고, 그런 뉴스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도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라 함께 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함께 지금 위기상황을 넘겨야 한다. 언젠가 모두가 함께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그때가 올 것으로 나는 믿는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완전하게 돌아갈 수는 없을 수도 있다. 안전은 여전히 불완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완전한 끝이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안전한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서로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종교인이든 시민이든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기후문제와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면 좋겠다. 누구 한 사람의 역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우애와 연대 가운데 나오는 지혜로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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