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다산과 행동가 백기완
학자 다산과 행동가 백기완
  • 박석무
  • 승인 2021.03.11 0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본지 위클리서울과 인터뷰하던 고 백기완 선생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위클리서울=박석무] 1836년 음력 2월 22일 다산 정약용은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185년째인 2021년 음력 정월 4일 백기완은 89세로 삶을 마쳤습니다. 2세기에 가까운 시간차가 있으나, 다산선생과 백선생은 서로 비교해서 거론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백선생의 부음을 듣고 빈소에 찾아가 문상을 하고 영결식이 열리는 시청 앞 광장에도 참석해서 선생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고 또 눈으로 보면서, 참으로 대단한 어른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구나라는 슬픈 마음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타계하신 때로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꼼꼼하게 듣고 읽어보면서, 평소에 뵙던 때와는 다른 많은 감동을 주는 내용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다산은 뛰어난 천재에 각고의 노력까지 아끼지 않았던 탁월한 학자이자 사상가였습니다. 다재다능한데다 박식하기가 이를 데 없는 분이었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최근의 위키백과 인물란에, “백기완은 대한민국의 시문학가 겸 소설가이고, 시민사회운동가, 통일운동가로, 정치인이자 작가이기도 하다”라고 표현하여 그의 다재다능함을 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다산은 본질적으로 탁월한 애국자였습니다. 모진 고난의 유배살이에서도 하루인들 나라와 백성에 대한 걱정을 잊지 못하고, 나라가 잘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학문적 연구에 손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백선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애국자였습니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은 일이 없었고, 군사독재와 정면으로 대결하며 고문에 찌든 몸을 이끌고 하루인들 투쟁의 대열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행동가였습니다. 그런데서 두 분의 애국심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다산은 자신이 살아가던 조선이라는 나라는 썩은 지가 이미 오래[腐已久矣]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썩은 것보다 더 정도가 심한 ‘썩어문드러졌다[腐爛]’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부패한 조선을 ‘부란’한 조선이라고 표현하여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했습니다. 백선생은 그의 대표적인 시,「묏비나리」에서 “저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목으로 역사를 돌리시라”라고 말하고 또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라고 거듭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엎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토로하였습니다. 200년의 긴 시간 차이가 있었건만, 다산과 백기완은 썩어 문드러진 세상에 대한 개혁사상을 그대로 지녔음을 알게 해줍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백기완에게는 매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다닙니다. “장산곶매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자신을 비워 시대의 어둠을 쪼아 깨뜨리고, 한 줄기 빛을 밝혀주신 분”이라는 어떤 분의 조사처럼, 장산곶매의 기상이나 투혼에 선생을 비교하기도 합니다. 다산 또한 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 학유에게 주는 가계(家誡)에서, “사나이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손으로 가볍게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라고 말한 바처럼, 비록 작지만 당차고 사나운 송골매처럼 날쌔고 용감한 기상을 지니라는 뜻이니, 백선생과 같은 생각을 지녔다고 보입니다.

다산은 바르고 평등한 세상을 그렇게도 희구했습니다. 백기완 또한 ‘노나메기세상’, 너도나도 일하여 함께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을 그렇게도 원했으니, 그 점에서 또 두 분의 생각은 많이 닮았습니다. 다산은 순수 우리말에 대한 애착이 참으로 컸습니다. 비록 한자를 빌려서 사용했으나, ‘높새바람’을 고조풍(高鳥風)이라 써서 새는 새을(乙)이 동쪽과 같으니 고조풍이 동풍이라고 표현했고, ‘마파람’을 마아풍(馬兒風)이라 표현하며 말은 오(午)이고 남쪽이어서 마아풍은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백선생이 ‘노나메기,’ ‘새내기’ 등 수 없이 많은 우리 말을 되살려냈던 점도 어쩌면 그렇게 닮은 꼴이 되었을까요.

시대가 다르고 세상이 달라 정확한 비교야 어렵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두 분은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타고난 착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덕(德)이 된다던 다산처럼, 백선생은 모두가 우러러볼 수 있도록 행하고 실천하고, 싸우고 투쟁만 하다가 떠난 분입니다. 200년 전에 우리는 다산을 이별했는데, 금년에 또 백선생을 이별했습니다. 두 분의 뜻은 언제쯤 현실에서 실현될 날이 올까요. 백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