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하고 밝은 에너지 뿜어내”
“민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하고 밝은 에너지 뿜어내”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8.11.19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인터뷰] ‘그림 그리는 재미’ 민화 전시회 작가 4인을 만나다 - 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허서령, 차보경, 임수경, 박연옥 작가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허서령, 차보경, 임수경, 박연옥 작가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 모임 이전의 생활은 어땠나요? 학창 시절이라든지 이후 주부로서의 삶이라든지.

허서령 : 그랬던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어요. 임수경 작가 같은 경우는 조금씩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했지만, 저처럼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기 바빴던 경우도 있죠. 아이를 키우다보면 정말 다른 데 쓸 시간이 없어요. 내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라곤 아이가 학교 갔을 때 겨우 문화센터 다니는 정도였죠. 그때도 제 전공에 대한 그리움이 늘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나 봐요. 한지 공예라던가 미술과 관련된 활동을 조금이나마 취미로 해왔던 것 같아요.

박연옥 : 전공으로 미술에 다가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전공을 했다고 해서 그에 걸맞게 작품 활동을 계속 하기에는 주부라는 위치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차보경 : 그래도 정말 미술을 좋아하기에 전공으로 정하는 것이다 보니 그 애정도 매우 높았어요. 우리 땐 학력고사를 쳐서 대학에 들어왔는데, 미술은 거의 유일하게 학력고사 성적을 보지 않고 전공에 대한 열정과 오랜 준비 과정으로 학도들을 뽑았으니까요. 그렇게 애써 들어간 학교였다 보니, 언젠가 미술을 꼭 다시 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박연옥 : 그렇기도 하고, 또 우리는 아주 운이 좋게 황창배 선생님을 만나 그 제자로서 많은 교육을 받았어요. 선생님은 한국화와 서양화의 기조와 경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셨던 분이에요. 그런 고민의 지점들을 제자인 우리들과 대학 시절에 나누시곤 하셨죠. 그러다보니 선생님의 많은 생각과 영향들이 4년 동안 우리에게 참 많이 녹아 들어온 것 같아요. 특별히 86학번 동기인 우리들이 다시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햇병아리였던 우리가 기존의 미술에 대한 교육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끔 만들어 주셨어요. 그렇기에 민화라는 장르는 사실 한국화를 전공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기도 해요. 천박하다고 느끼는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천박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정작 한국화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 시각이 전혀 달라지죠.

 

- 전시회가 황창배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뜻 깊을 것 같은데, 전시에서 황창배 선생님의 숨결이나 가르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허서령 : 사실은 아직 완전히 탐구 단계죠. 손 풀기가 덜 됐다고 느껴요. 민화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거든요. 매우 다양하고 재밌기도 하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기도 하죠. 그 모든 민화의 과정을 겪다보면 황창배 선생님의 가르침이 새어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사실 선생님께 많이 혼나고, 그 분이 말씀하시는 일탈을 전혀 해내지 못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웃음)

박연옥 : 그에 반해서 황 선생님의 말씀대로 무한한 자유를 느낀 친구가 임수경 작가예요. 허서령 작가는 틀을 벗어나는 느낌을 주진 않지만 틀 안에서 나름대로의 충분한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어요. 본인의 색깔과 감성을 차분히 쌓아서 드러내고 있죠.

허서령 : 그래서 이런 장소에서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만감이 교차하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늘 과감하고 깨치며 나아가라고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떠올라요.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 제자를 예쁘게 봐 주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박연옥 작가의 ‘화접초충도’ : 양귀비는 씨앗을 가득 담은 꽃으로 알을 많이 낳는 방아깨비와 같이 다산을, 쇠뜨기 풀은 강한 번식력과 자손 번창을 기원한다. 나비는 장수와 부부금슬을, 패랭이꽃은 ‘석죽화’라 하여 젊음과 장수를 축원하고, 바위 또한 장수를 기원한다. 하늘소는 갑제갑충으로 장원급제의 출세를, 제비꽃은 ‘여의’라 하여 뜻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박연옥 작가의 ‘화접초충도’ : 양귀비는 씨앗을 가득 담은 꽃으로 알을 많이 낳는 방아깨비와 같이 다산을, 쇠뜨기 풀은 강한 번식력과 자손 번창을 기원한다. 나비는 장수와 부부금슬을, 패랭이꽃은 ‘석죽화’라 하여 젊음과 장수를 축원하고, 바위 또한 장수를 기원한다. 하늘소는 갑제갑충으로 장원급제의 출세를, 제비꽃은 ‘여의’라 하여 뜻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임수경 작가의 ‘화조도’ : 아름다운 꽃 위로는 물총새 한 쌍이 노닐고 바위 위에는 대나무가 곧게 그려진 그림으로 금슬 좋은 부부가 곧은 절개를 지키며 장수하며 살아가고픈 뜻이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임수경 작가의 ‘화조도’ : 아름다운 꽃 위로는 물총새 한 쌍이 노닐고 바위 위에는 대나무가 곧게 그려진 그림으로 금슬 좋은 부부가 곧은 절개를 지키며 장수하며 살아가고픈 뜻이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 민화라는 건 사실 아직 생소하잖아요. 교과서에서 배우던 민화 외에 전시로 보여줄 만한 다른 모습이 있을까요?

박연옥 : 젊은 사람들에게 민화가 낯선 건 당연한 거예요. 그동안 어디에서도 민화를 제대로 다루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교과서는 민화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못해요. 오히려 민화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역량을 제한하고 편협한 프레임 속에 가둬 놓죠. 그래서 민화라고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만 떠오를 뿐 그 외를 생각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민화는 모든 작품을 통틀어 똑같은 묘사나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쳐요. 그런 점들을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해요.

허서령 : 생소하다고 하는 그 마음을 제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7년 전쯤 아는 선배가 왜 그림을 안 그리느냐고 묻기에 도저히 자신감이 없다고 대답한 적이 있어요. 그때 민화를 해보라는 권유를 처음 받았는데 정말 싫더라고요. 민화 중에서도 ‘책거리’라는 작품은 제가 가장 싫어했던 작품이기도 해요. 그러나 지금은 그걸 가장 열심히 그리고 있죠. 촘촘히 쌓여서 화려하게 드러나는 색감으로부터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민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하고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민화를 감상하는 사람들 또한 그런 에너지를 직접 얻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차보경 작가의 ‘모란영수화병도’ :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과 수호신을 나타내는 상상의 동물화병을 그린 영수도로 부귀와 장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차보경 작가의 ‘모란영수화병도’ :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과 수호신을 나타내는 상상의 동물화병을 그린 영수도로 부귀와 장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허서령 작가의 ‘책거리’ : 책거리는 조선시대 정물화이며 책갑의 선, 면, 색상의 기하학적이고 화려한 장식성으로 현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화목이다. 출세의 상징인 책을 중심으로 기물들이 뜻하는 평안, 부귀, 축복 등의 길상적인 의미들과 함께 자식을 많이 낳아 공부를 시켜 출세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 또한 가득 담겨 있다.
▲허서령 작가의 ‘책거리’ : 책거리는 조선시대 정물화이며 책갑의 선, 면, 색상의 기하학적이고 화려한 장식성으로 현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화목이다. 출세의 상징인 책을 중심으로 기물들이 뜻하는 평안, 부귀, 축복 등의 길상적인 의미들과 함께 자식을 많이 낳아 공부를 시켜 출세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 또한 가득 담겨 있다.

 

- 자유와 일탈을 느꼈다는 임수경 작가님 말씀도 들어보고 싶어요. 제한적인 것만 같은 장르 속에서 어떤 자유와 일탈을 느끼셨나요?

임수경 : 저도 처음엔 틀에 박혀 있는 법칙이 민화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꼼꼼하게 채색하는 작업이 마음에 안 들었었죠. 창조적이고 순간적으로 영감을 내쏟는 작품을 해왔지, 차곡차곡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작품은 무의미하다고만 생각했죠. 그래서 민화를 취미로만 취급하고 예술이라고는 전혀 생각 안 했어요. 계속 하다 보니 학과 때 간과했던 점이 느껴지더라고요. 왜 이것저것 안 해보고 오히려 편협한 틀에 나를 가뒀을까. 그러고 나서 박연옥 작가를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어요. 결과도 다르게 내볼 수 있을 거라는 용기도 가지게 되었고요. 이젠 허서령 작가처럼 공을 들여 만드는 작업에도 욕심을 내기 시작했어요. (웃음)

차보경 : 저도 민화를 그린 지 얼마 안 되었어요. 민화를 똑같이 모사해내지 못하죠, 여전히. 항상 내가 해보고 싶은 방향성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내적 고민을 친구들과 만나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음으로써 해결하는 것 같아요. 대화와 교류를 통해 새로운 생각과 결론들에 도달하고, 이를 다시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거죠.

임수경 : 참 중요한 책임감도 생겨요. 놓쳤던 가치와 아름다움을 우리 식으로 풀어내면서 현대화하는 작업도 우리가 책임 있게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허서령 : 인사동에서 민화를 그리시는 분들은 모사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우리를 찾아가려고 최선을 다해요. 최초의 작품에서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찾는 노력을 통해 아롱이다롱이 같이 작가 개개인의 개성을 만드는 거죠.

박연옥 : 인사동에서 민화를 해오신 분들은 늘 선생님께 사사 받으며 배워왔어요. 그러다 보니 항상 정해진 색깔과 기법으로만 민화를 그려온 거죠. 한동안 이를 통해 명맥을 이어왔지만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혔다고 생각해요. 늘 주제가 같음으로 인한 답답함 앞에서 괴로움을 저희도 느끼곤 있어요. <3회로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