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대체 무슨 영화인가요?
이건 대체 무슨 영화인가요?
  • 김재범 기자
  • 승인 2017.06.2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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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의 영화 톺아보기> ‘악녀’

두 눈 똑바로 뜨고 123분을 지켜봤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한지도 어언 15년이 넘었다. 학창 시절까지 포함하면 영화란 매체를 통해 밥벌이를 해온지 20년이 넘는다. 이 기나긴 시간 동안 오늘 가장 괴상한 경험을 했다.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 또렷이 스크린을 응시하며 영화를 감상했다. 그런데 도대체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무려 칸 영화제에 초청까지 됐던 작품이다. 전 세계 영화 최고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칸 영화제가 인정한 색다른 액션 느와르란 찬사에 마초 감성이 꿈틀거렸다. 더욱이 서울 액션스쿨 8기 출신의 전문 액션 영화인 정병길 감독이 ‘대놓고’ 액션을 위해 만든 영화다. 국내 영화 시장에선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여성 원톱 핏빛 액션 장르. 영화 ‘악녀’다.

결론부터 시작하자면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참담함이 밀려왔다. 영화와 글로 밥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프로 글쟁이라고 자칭한다고 해도 ‘대체 어디서 어떤 감성을 따라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단순한 일반 관객의 입장이라면 더욱 난처하다. 스토리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편집은 논할 가치조차 없었다. 대체 무엇이 칸 영화제의 초이스를 받게 했는지 의문투성이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기본 스토리를 읽어보기만 해도 이 영화의 정체성은 모방이다. 사실 모방이 질타를 받아야 할 지점이라면 분명히 반대표를 던진다. 하지만 ‘악녀’는 모방을 넘어 습작 수준에 머물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성 원톱 액션 영화 몇 편이 뒤섞여 있을 뿐이다.

주인공 ‘숙희’(김옥빈)는 중국 연변 출신이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뒤 킬러들의 손에 이끌려 복수를 꿈꾸는 살인기계로 자라나게 된다. 영화 시작과 함께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지는 집단 살육 장면은 쾌감 지수 100점 만점의 카타르시스를 자랑한다. 처음 시작점이 ‘악녀’ 속에서 꼽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이후 숙희는 국내 한 조직(국정원으로 추정)에 강제 감금된 뒤 또 다른 킬러 교육을 받는다. 훈련소라 불리는 공간에서 또래 여성들과 함께 합숙을 하면서 전문 킬러 교육생으로 생활한다. 얼굴도 바꾼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까지 출산한다. 이후 월등한 실력으로 퇴소 후 일반인과 킬러란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사회 속으로 숨어든다. 조건은 10년 동안 조직의 명령을 따른 뒤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 여기까지는 이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여성 액션 레전드 ‘니키타’의 그것과 동일하다. 홍콩액션 영화 ‘네이키드 웨폰’도 마찬가지다. 몇 장면은 앞서 언급한 영화 속 장면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 듯 보일 정도다. 하지만 사실 그게 문제는 아니다.

‘악녀’는 이 지점에서 차별성을 하나 두고자 조직의 멤버인 현수(성준)를 투입한다. 현수는 숙희를 감시하기 위한 임무를 맡는다. 그 임무를 위해 그는 숙희에게 감정적으로 접근, 그의 환심을 사는 데 집중한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부부사이가 된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발생한다. 조직의 살해 명령이 떨어지고 그 대상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 중상(신하균)이다. 중상은 숙희를 킬러로 만든 연변 조직의 수장. 현수와의 결혼식 날, 살해 명령을 받고 총을 겨눈 숙희의 눈에 중상이 들어오고 혼란은 커진다.

‘악녀’의 기본 토대는 꽤 그럴 듯하다. 영화는 장르적 구분을 통해 모방과 변주 그리고 탈피를 거듭하게 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한다고 해도 사실 ‘악녀’의 스토리 뼈대는 상업적 얼개로만 보자면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 영화 ‘악녀’ 스틸컷

 

‘액션 전문 감독’이란 타이틀이 전혀 아깝지 않은 정병길 감독은 애초부터 이 영화의 스토리와 구성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듯 했다. 영화 러닝타임 동안 도식적으로 배치된 액션의 배분은 기계적이다. 한 마디로 강약 조절에만 집중한 채 불필요한 지점에서까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들이민다. 어느 한 부분을 꼬집기 힘들다. 전반적으로 그렇다.

드라마와 액션의 기계적인 배치로 인해 장면과 장면의 앞과 뒤가 전혀 맞아 떨어지지 않고 따로 움직이는 문제도 있다. 숙희의 아버지가 왜 죽음을 당했는지, 중상이 왜 숙희를 거뒀는지, 중상의 오른팔 춘모가 왜 숙희를 문제의 장소로 이끌어 왔는지, 현수가 숙희에게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장천과 중상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 모든 것이 ‘어영부영’ 넘어가 버린다. 그저 영화적 점핑 기법이라고 치부한다면 관객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거나 감독이 연출에 대한 고민이 없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현장 촬영 당시 신(Scene)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한 제작진의 아마추어적인 문제다.

액션의 비현실성도 눈에 거슬린다. 영화다. 영화는 가상이다. 가상은 가짜다. 이런 단순한 전제조건을 넘어선다고 해도 사실 거슬리는 것은 차고 넘친다. 서울 한복판에서 서부활극의 그것을 넘어설 정도의 총싸움을 벌이는 장면, 대한민국 한가운데 범죄 조직의 수장이 집에서 일본식 유카타와 일본도를 휘두르는 모습, 오토바이를 타고 벌이는 화려한 칼날 액션 등. 눈은 즐겁지만 머리에선 코웃음이 쳐지는 장면의 연속이다.

화면의 앵글도 착각의 산물이다.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구다. 그 도구를 통해 이야기의 깊이를 측정하게 되고 액션의 강도를 논할 수 있으며 분위기를 잡아내고 전체의 색깔을 입힐 수 있다. ‘악녀’는 첫 시작부터 현란하다. 현란하기만 하다. 1인칭 슈팅게임을 보는 듯한 영화 오프닝 시퀀스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그것임에는 분명하다. 숙희의 시점에서 순간적으로 카메라가 빠져나와 숙희의 얼굴을 다시 비추는 장면 등은 연출을 맡은 감독과 촬영 스태프의 고민이 묻은 스킬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뿐이다. ‘악녀’의 앵글은 ‘화려함’은 넘치지만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는 완벽하게 실패한다. 관객들에게 피부로 다가오지 못하니 쉽게 지쳐버린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된다. 나아가 영화 자체도 쉽게 지친다. 앞서 설명한 드라마와 액션의 도식적 배치로 인해 액션의 쾌감이 끓어오를 때쯤 그것을 터트리지 못하고 난데없이 인물의 감정을 담기 위해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로 들어가 버린다.

결국 이런 ‘속빈 강정’식의 구성품이 123분을 채우고 있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도 난잡하고 어색하다. 김옥빈의 액션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잔인하고 거칠다. 하지만 액션에만 집중하다 보니 영화 자체의 톤이 허전하다 못해 허무하다. 액션 장르 영화라기 보단 ‘액션스쿨 교육생’ 대상 교보재 동영상 수준으로 보일 정도이니. 신하균의 무색무미 연기, 성준의 마네킹 캐릭터 해석, 김서형의 로봇 연기는 애교 수준으로 보인다.

‘악녀’가 어떤 지점에서 칸 영화제의 선택을 받게 됐는지는 지금도 납득 불가다. ‘악녀’를 본 뒤 영화 칼럼니스트로서 마무리할 한줄 평은 이 정도면 진수성찬급 아닐까.

“감독님, 제발 연출은 이제 자제해 주세요.”

<김재범 님은 영화칼럼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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