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의 긴 기차여행, 몸뚱이는 2박3일 꿀물에 재웠다 막 건져 올린 인삼처럼, 끈적끈적한 딱풀처럼…
16시간의 긴 기차여행, 몸뚱이는 2박3일 꿀물에 재웠다 막 건져 올린 인삼처럼, 끈적끈적한 딱풀처럼…
  • 문지연 기자
  • 승인 2015.08.03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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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좌충우돌 인도 여행기-17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아우랑가바드 역전



오르차에서 출발한 기차는 밤이 깊도록 경적을 울렸다. 9시간쯤 달렸을까. 삽시간에 날이 환해지더니 어느 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기차 안 사람들의 얼굴은 벌써 몇 번씩 달라져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은 것은 오직 필자뿐이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건 말건, 필자는 1분 1초라도 다리를 쭉 뻗고 눕고 싶은 간절한 바람뿐이었다.

좁디좁은 침대칸에서 자주 몸을 뒤척이는 것은 금물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찝찝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전날 땀범벅이었던 몸을 씻지 못했으니 오죽하랴. 팔, 다리와 겨드랑이, 목덜미 할 것 없이 온 몸 구석구석이 ‘딱풀’을 발라 놓은 것처럼 끈적였다. 2박3일 꿀물에 재웠다가 이제 막 건져 올린 인삼 같다는 표현이 제격. 통탄할 지경이었다.

어느새 기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힘을 잃어갔다. ‘끼익’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기차가 멈추어 섰다. 드디어 아우랑가바드. 기차에 오른 지 16시간 만이었다.

장시간의 기차 여행은 몇 번을 반복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인도 여행에서 장거리 이동은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여행의 모든 과정이 결코 만만했던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견뎠고 극복했다. 스리나가르에 가기 위해 32시간 넘게 버스를 탄 적도 있었다. 인도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국경을 넘느라 하루 꼬박 기차에서 시간을 보낸 경험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유독 이날의 기차 여행은 참으로 고단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더위와 싸우며 기차에서 노숙을 했던 특별한 경험 때문인 듯하다.

기차에서 내리니 삽시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있는 것조차 힘겹게 하는 어마어마한 더위와 소위 ‘맞짱’을 뜨느라 온 몸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이유다.


 

▲ 비비 까 마끄바라 : 1678년 아우랑제브 황제의 아들 아잠 샤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묘. 타지마할을 모델로 설계했다. `리틀 타지마할`로 불린다.



역을 빠져 나오니 더위의 맹공은 더욱 강력했다. 대지의 복사열이 태풍처럼 휘몰아쳐 필자를 덥석 삼키는 것만 같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알게 된 것인데 아우랑가바드는 내륙의 건조지대에 있어 무더위가 극심한 동네로 유명한 곳이다. 필자보다 먼저 여행을 갔던 어느 블로거는 “이 시기만큼은 이 동네 관광을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어쩐지…어쩐지…ㅜ.ㅜ’

아우랑가바드를 선택한 것은 근교에 위치한 관광 명소 아잔타와 엘로라를 비교적 쉽게 오갈 수 있는 지리적 특징 때문이었다. 허나 이렇게 더울 줄 알았다면…. 하기야 애초에 출국 도시를 첸나이로 정하고 더위와 함께 남부 지역으로 줄기차게 동행을 했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기차역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릭샤왈라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숙소와 숙소 사이가 멀어서 걷기 힘들어. 더위에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차에 타.”

두 귀가 쫑긋. 망설이고 자시고할 것도 없었다. 무차별 폭격 수준의 더위는 일단 피하고 볼 일이었다.

아저씨가 말한 안락하고 편안한 차는 범퍼가 찌그러지고 창문이 잘 안 닫히는 정체불명의 소형차였다. 창문을 열고 닫는 버튼 대신 좌우로 돌리는 옛날식이었다. ‘삐걱’ 소리를 내는 뻑뻑한 손잡이를 힘주어 돌렸다.
 

 

▲ 비비 까 마끄바라의 여러가지 문양



순간 과거의 기억이 불쑥 찾아왔다. 어린 시절 멀미가 심해 차에 오르는 것이 그리 힘들었으면서도 자가용을 갖고 있던 이들이 몹시도 부러웠다. 어쩌다 누군가의 차에 탈 기회가 있을 때면 뒷좌석의 창문 손잡이를 열심히 돌렸고 시원한 바람 들이키며 멀미를 견디곤 했다.

인도는 지나간 기억의 편린들을 조각조각 모아 붙여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는 동네였다. 퍼즐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다보면 새까맣게 잊고 있던, 천만가지의 소소한 꿈을 꿈꾸던 한 소녀와 마주하곤 했다. 그때 소녀는 뒷좌석의 창문 손잡이를 돌려가며 멋진 내 차를 꼭 사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지금 필자는 새것 같은 중고 경차 한 대를 갖고 있다. 남들 다 있는 것, 그것도 크지도 않은 것 하나 갖고 있는 것이 뭐 대수인가 싶었는데, 따지고 보니 그때 그 시절 소녀의 소원 하나는 이룬 셈이다. 다시 생각하니 흐뭇하다.

릭샤 아저씨에게 50루피를 지불했다. 세 번째로 찾은 숙소에 1박 요금 750루피를 지불하고 에어컨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들어오자마자 시원하게 샤워를 마쳤다. 이제, 잠시나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호사를 부려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에어컨 실루엣을 보니 불현듯, 불안이 엄습해왔다. 더위의 융단 폭격에 시달렸던 아그라에서 시종일관 미지근한 바람만을 토해내던 무늬만 에어컨이던 고철 덩어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에어컨 작동 법은 옛날 아날로그 텔레비전과 비슷했다. 손잡이 같이 생긴 버튼을 옆으로 돌려 채널을 맞추던 것 말이다. ‘드르륵’ 전원이 켜짐과 동시에 바람이 새나왔다. 하~ 차라리 미지근한 바람만 불었다면 그나마 좋았을 걸.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백년은 족히 묵었음직한 곰팡이가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 이러려고 웃돈 주고 에어컨 방을 잡았던 말이던가! ㅜ.ㅜ’
 

 

▲ 빤짜끼 내부 모습 : 빤짜끼는 아우랑제브 황제의 스승이던 무자파르의 묘가 세워진 기념공원이다.



“야, 차라리 그냥 밖으로 나가자.”

숙소에서 나와 아우랑가바드 시장 일대를 누볐다. 더위에 걷는 것도 지쳐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타지마할을 모델로 설계했다는 묘지 ‘비비 까 마끄바라’로 향했다.

‘비비 까 마끄바라’는 1678년 아우랑제브 황제의 아들인 아잠 샤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묘다. 타지마할 제작비만큼을 쓸 수 없어 묘비 주변과 돔에만 대리석을 썼다고 한다.

오토릭샤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저 멀리 타지마할과 비슷하게 생긴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에게 듣던 것처럼 과연 ‘리틀 타지마할’이었다. 그러나 형상만 비슷할 뿐 타지마할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던 탄성은 아예 없었다. 숭고한 아름다움에 넋을 놓았던 그때 그 경이로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담한 닮은꼴을 비교하는 작은 즐거움만 있을 뿐. 그러다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외관만을 견주는 것은 금물이다. 어머니를 기리는 아들의 숭고하고 웅숭깊은 마음의 의미를 떠올려야지.’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작게나마 곱씹었던 순간이었다.

뒤이어 아우랑제브 황제의 스승이던 무자파르의 묘가 세워진 기념공원 ‘빤짜끼’를 찾았다. ‘빤짜끼’는 물레방아라는 의미다. 가까운 언덕에서 끌어온 물로 수력제분기를 돌려 분수를 만드는 등 당시의 뛰어난 관개기술을 보여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인도 청년들 : 비비 까 마끄바라 관람 중에 사진을 찍자며 달려온 청년들. 많은 인도인들이 외국인과 사진 찍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막상 갔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와 느낌이 떠오르기보다는 입구에서부터 쭉 늘어선 기념품 가게가 더 눈에 띄었다. 잠시 산책하는 기분으로 내부를 살피고는 곧 밖으로 나왔다. 인도는 어딜 가나 입이 쩍 벌어지는 으리으리한 유적과 문화재가 많은 터라 시간 관계상 몹시 작은 규모는 아예 돌아볼 생각조차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빤짜끼’를 낙점한 것은 숙소에서 멀지 않으며 유명 관광지와 비교해 아우랑가바드 내에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이유였다.

오토릭샤를 타고 기차역에서 내렸다. 배낭여행을 할 때마다 숙소는 일부러 역이나 터미널 부근에 잡는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 숙소 찾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하나의 습관은 여행의 좋은 팁이 되곤 한다.

현금지급기를 찾아 기차역 오른쪽으로 쭉 걸었다. 가는 길목과 건너편에서 쏘아붙이는 서늘한 눈빛을 여러 번 목격하고는 덜컥 겁이 났다. 험상궂고 짓궂은 사람이 여럿 눈에 띄는 이 일대는 아무래도 조심히 다녀야할 것 같았다. 특히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삼가야 했다. 

숙소 가는 길에 20루피 하는 땀띠 파우더를 샀다. 오르차에서부터 달고 온 목 주변의 땀띠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서다. 캬~약 발라보니 효능이 기가 막혔다. 파우더를 뿌릴 때마다 땀띠가 조금씩 사라지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어느새 저녁. 삼류 체력에 기를 불어 넣을 탄두리 치킨으로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유독 피곤했던 하루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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