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질을 하다가, 웃다가 네 생각이 난다…나는 운다
칫솔질을 하다가, 웃다가 네 생각이 난다…나는 운다
  • 정은호 기자
  • 승인 2015.07.07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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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공지영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 왼쪽부터 이어령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와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이어령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열림원, 2015)’>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사랑해 주세요. 그 사랑을 아이가 강렬히 느끼게 해주세요.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명만 있어도 아이들은 자살하지 않습니다.’<2011년 조선일보>

전 세계를 돌며 술과 마약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는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교수의 막내딸 이민아 목사였다.

그는 이대 영문과를 3년 만에 조기졸업한 후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을 감행,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를 출산한다. 하지만 첫 남편과 이혼한다. 재혼 후 낳은 아이는 특수 자폐 판정을 받고 첫째 남편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대학생 때 돌연사 한다. 그 후 암선고를 받고 판사, 변호사를 거쳐 목사가 되어 방황하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다.

▲ 이민아 목사 이화여대 졸업사진

그의 인터뷰는 여기까지 진행됐지만 다음 해 암이 재발해 파란만장하던 삶도 끝이 난다.

당시 인터뷰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어린 시절에 기억한 아버지 이어령의 모습이다.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이자 합리적 이성주의자인 그는 어떤 아버지였을까? 작가의 일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로서 남편이자 아버지 이어령의 모습을 슬쩍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숨어 들어와 위스키를 훔쳐 마신 적이 있다.’

‘(남편과의 불화를 겪을 때) 어릴 때 아버지가 원고 마감시간이야, 얘 좀 데려가! 하고 소리질렀을 때처럼 가슴이 찢어졌다.’

이어령 교수의 냉철하고 이지적인 글들이 정작 그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앗아 간 잔인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글은 도피하고 싶은 절대자유였겠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온전히 가족의 몫이었다. 하지만 차가웠던 아버지도 딸이 실명할 위험에 처하자 변하기 시작한다. 무신론자인 그가 세례를 받아 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딸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지금 이어령 교수는 아버지의 민낯으로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한 번도 해주지 못한 굿나잇 키스를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글로 담아 엮은 책이 바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다.

‘너는 한 아들을 잃고 세상의 땅끝 아이들을 품었다.

나는 딸 하나를 잃고 더 넓은 세상의 딸들을 품는다.’

책의 서문에서 아버지 이어령은 말한다. 책을 출간했지만 여전히 이 글이 세상에 나오는데 거부감이 있다고. 가시처럼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딸이 왜 그토록 신에 의지하며 사랑을 베풀며 살았는지, 그 힘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딸이 죽고 난 후 이해하게 됐다며 세상의 모든 딸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이에게 이 글을 바친다고 적고 있다.

책에서 아버지 이어령은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의 일을 떠올리며 자신이 어떤 아버지였는지 되새겨본다. 아버지의 몫이 가정을 지켜주는 단단한 존재라는 생각에 아이가 기대하는 사랑을 제대로 주지 못했던 건 아닌지 반성도 한다. 우리네 평범한 아버지들이 밤낮으로 식구들 먹여 살릴 돈 버느라 정작 아이들에게 따뜻한 곁을 내주는 소박한 애정표현 조차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만이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팔순의 아버지는 기적으로라도 그 때 그 시간으로, 딱 30초의 시간만 되돌려 잠옷입은 딸아이를 두 팔로 안아주고 싶다고 단 한번만이라도 굿나잇 키스를 해주고 싶다고 절절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토록 오랜 시간 표현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딸을 잃고 난 후 이성으로 무장한 머리를 내려놓고 가슴으로 딸을 끌어안고 숨죽여 운다.

‘눈 비비며 일어나/칫솔질을 하다가/신발을 신으며/고개를 들다가/창밖을 보다가/말을 하다가/웃다가/시침을 하다가

네 생각이 난다/해일처럼 밀려온다/그 높은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나는/운다’<책 2부에 소개된 이어령의 시 ‘네 생각’ 중>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한겨레출판, 2015)’>

아버지 이어령의 인간적인 고백이 생과 사에 대한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면 엄마 공지영의 솔직한 편지는 각박한 시대를 향한 경쾌한 한방이 있다. 엄마 공지영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딸아이가 실패를 경험한 후 낙담하자 딸의 마음을 다독이면서 요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챕터에 한 가지씩 요리를 알려주면서 인생의 팁을 곁들인다. 근데 작가 공지영이 얘기하는 인생의 팁은 고리타분한 교과서가 아니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아' '인생은 불공정하니까 살기 쉬운 거야' 그는 딸에게 단호히 말한다. 인생은 결코 꽃밭이 아니라고. 원래 인생은 힘들고 지루하고 고된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이고 본인의 지금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고 엄마로서, 인생 선배로서,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이야기한다.

▲ 작가 공지영

세 자녀의 아버지가 모두 다 다른 아픈 가족사를 갖고 있는 그는 이 사실도 허심탄회하게 고백한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너를 키우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엄마가 너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엄마도 인생이 뭔지 잘 몰라서 그랬어' 엄마의 속죄가 너무나 쿨해서 아이들이 도무지 반항하지 못할 듯하다.

엄마 공지영의 이야기는 대학생 딸아이가 엄마와 마주앉아 나눌법한 이야깃거리로 가득 차 있다. 여자로서 사회적 직업을 가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인생에서 어떤 사람들을 꼭 피해야만 하는지, 행불행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너가, 너의 몸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소한 일상의 질문으로 시작되었던 물음이 젊은 세대의 공통적인 고민으로 커져나간다. 졸업은 했지만 취직은 못한, 사회에 나왔지만 인생의 해답은 찾지 못한, 인문계가 모두 절망에 빠져 정신적으로 배고픈 우리시대의 청년들이라면 공감할만한 내용들이다. 거기에 심심치 않을 요리 레시피까지 있으니 힐링 에세이를 찾는 주부들에게도 유익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글이라는 완전한 세계에 갇혀 사는 작가의 진짜 민낯을 보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들의 민낯은 정제되지 않은 어설픈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글쟁이답게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그 모습이 가장 익숙한 아버지, 어머니라니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 물론 공지영의 글은 상업적 에세이를 많이 써온 작가답게 트렌디한 기획출판물의 느낌이 많이 담겨있다. 역시나 출간되자마자 7월 7일 현재 에세이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2위)에 올랐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치문제, 미래가 안 보이는 교육문제, 답이 없는 사회 문제 등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는 이 때 아버지 이어령, 엄마 공지영에게 진솔한 인생얘기를 전해 들으며 잠시 마음을 비워보자. 인생 선배인 그들이 이야기하는 삶의 의미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지금, 여기,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본질에 충실할 것. 그리고 작가 모두 공통적으로 '메멘토 모리' 죽음을 삶속에서 기억하고 준비하는 자세로 겸허히 인생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이어령처럼 겸허히 신앙에 귀의하던지 어머니 공지영처럼 영혼을 살찌우는 요리에 빠져들든지,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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