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원해서? 아니 내가 원해서!
남들이 원해서? 아니 내가 원해서!
  • 박신영 기자
  • 승인 2014.07.09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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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은 나에게 더 이상 꿈이 뭐냐는 질문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10대 때는 심심하면 물어보곤 했는데, 20대가 되면서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그런 질문을 받은 게 까마득해지고 말았다. 계획이 어떻게 되니? 앞으로 뭐 할거니? 뭐 먹고 살거니? 이런 질문들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데… 네 꿈은 뭐니? 이 질문만큼은 꺼낼 일도, 들을 일도 거의 없다. 이제는 그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다. 다른 사람의 눈에도, 이십대 중후반에게 꿈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꿈에 대해 생각할 일도 거의 없다. 내 꿈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꿈꾸며 살고 있는지, 내가 진짜 꿈꾸고 싶은 건 뭔지.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요즘의 내겐 꿈이란 단지 잠들 때 꾸는 것일 뿐이다. 어쩐지 꿈 타령을 하고 있는 것도 조금은 수줍은 나이. 나이와 꿈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꿈을 좇는다는 게 우습고 부끄러운 일처럼 여겨진다. 정작 꿈이 뭔지도 모르면서….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아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냥 그런, 유행하는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스쳐지나가듯 본 화면에서는, 못해도 불혹은 넘긴 듯한 아저씨가 잘 하지도 못하는 춤과 노래를 열정적으로 뽐내고 있었고, 그의 부인 말 대로, 어떻게 여기까지(아마 통과단계가 있는 모양이다) 올라온 건지 의문이 들더라. 편집에서는 그의 허덕거리는 춤을 부각하기 위한 고의성이 눈에 띄었다. 마무리는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느니 훈훈하게 했지만, 그가 출연하는 내내 조롱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평범하지 않는 꿈을 좇는 이미지라는 게, 중년남성의 허덕거리는 우스운 춤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네의 꿈은 어찌되었든 ‘평범’을 벗어나지 않도록 기를 써야만 한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우리 사회는 다 큰 성인들의 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딱히 꿈이 뭔지 고민해보지 않고도, 평범하게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때가 결코 저절로 도래하진 않는 것 같다. 누구나 나를 보면 꿈에 대해 묻던 때에도, 나름대로 성적이나 입시 따위의 사정으로 인해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뒀었다. 성인이 되면, 진정한 꿈이 무엇일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내 앞에 선물처럼 나타나 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또 대학에 입학을 하고, 이제 더 이상 입시는 없구나 생각하는 그 순간. 대학생이 된 내 앞에는 또 다른 ‘사정’이 나타나더라. 학점이나 시험, 졸업, 취업.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두고, 꿈을 찾아 고민한다는 게 마치 도피처럼 느껴졌다. 당장 급한 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내 학점 평점이 4.0을 넘을 수 있는가 따위의 것이지 내 적성과 어떤 일을 하면 행복감을 느끼는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청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을 준비하는 지에 대한 고민과 설정은 쏙 빠진 채, 그저 준비를 한다는 것에 급급한 채로 청춘의 시간을 소비한다. 무엇을 준비하는지에 대한 부족한 논의는 적당히 평균적인 것으로 대체된다. 남들이 다 이야기하는 것들. 졸업. 취업. 높은 연봉, 집, 차, 결혼, 뭐 그런 것들. 그렇게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가지면, 그럼 성공한 인생이지 않나. 그 때에 그런 것들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면 불행해지고 말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을 담보로 그때의 행복을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 내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고민은 슬그머니 남들의 것으로 대체되어 있다. 만약 그 모든 것을 이루고서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럼, 어떡하지? 싶지만 그럴 리 없다고 애써 외면한다. 대기업에 취직하면 막연히 행복해지리라 생각하는 취준생처럼 말이다. 도서관에 박혀있는 취준생은 오늘도 열심히 대기업 적성검사를 준비한다. 빨리 대기업에 취직해서 부모님 기도 살려드리고, 나도 당당하게 백수를 탈출할 수만 있다면. 부러워하는 친구들 얼굴, 지인들의 칭찬. 생각만 해도 행복할 것만 같다. 그 영광의 날을 위해 오늘도 대한민국 취준생은 청춘을 반납한 채 도서관 구석에 머리를 박고 앉아있다. 그렇지만 대기업 사원이 정말 ‘나의 꿈’인가. 그건 단지 남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가지는 것일 뿐이다. 남들이 바라는 것을 나 역시 정말로 꿈꾸고 있는가. 이런 고민은 수개월, 수년을 고생해서 이룩한 그 영광의 날, 그 직후부터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한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 교사가 되기만 한다면 더 이상의 고통이 없을 줄만 알았던 사람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시 입학했다. 누구나 원하는 대한민국 최고 일류 대학에 입학한 사람은, 생각과 달리 일류대학이라는 마스터키로도 평탄하게 풀리지 않는 삶에 당혹스러워한다. 나의 꿈이 아닌 타인의 꿈을 이룬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의 성공에 대해 얼마나 부러워하는가와 상관없이 이런 허무함을 느낀다. 손 뻗은 만큼 도망가는 행복한 삶이 당혹스럽다. 그간의 인내와 고통들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보상심리는 더욱 다른 길을 볼 수 없게 만든다. 내 모든 노력들을 한순간에 부정하는 용기는 쉬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적당히 타협한다. 내가 이룬 자리를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보라. 타인의 부러움으로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확인하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자신의 것이 아닌 행복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아무리 세뇌해도 모자란 행복감은 ‘덜 이룬 것’에서 찾는다. 내가 아직 갖지 못해서 여전히 부러워해야 하는 것들. 연봉, 집, 차, 결혼. 또다시 끝없는 준비로 돌아온다. 이 모든 것의 끝에도 여전히 비슷한 결말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나이가 먹음과 함께 점차 출연 빈도가 줄어간다. 기계처럼 남의 욕망을 살아간다. 꿈은 또 그만큼 어색한 단어가 된다. 꿈을 좇는 다는 것은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 같다. 현실은 입시, 학점, 취직, 연봉, 집, 결혼, 자녀, 다시 입시, 학점, 취직, 연봉…, 뭐 그런 것들일 텐데.

‘노래를 부를 때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 같다.’든지, ‘춤을 출 때 심장이 뛴다.’ 뭐 이런 말들은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오글거리는 대사 아닌가. 유치하고 오글거린다. 그러다 문득, 삶을 돌아보면, 내 삶이 무채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텔레비전 속의 저 유치하고 이상한 사람들은 삶이 반짝거린다는데, 언제부터 내 삶은 열정이나 반짝거림이 다 사라져 버렸을까. 후회는 때로 더 이상 변화할 힘이 없을 때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는 정말 너무 늦어버린 후다.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왜’ 바라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정말 그것이 나의 꿈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욕망도 학습된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들을 막연하게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나쁘다고만 몰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타깝고 아쉽다. 모두가 바라는 그 꿈은, 정말로 내 꿈도 아닌 주제에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요구한다. 고생 고생해서 이루고 난 뒤라 하더라도 정말 기대만큼 행복감을 안겨주지 못할 수도 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비효율이다.

삶은, 인생은, 한정되어 있다. 짧은 순간순간이 아쉽고 아까운 것들이다. 온전한 나의 꿈을 바라보며 살아도 모자랄 수 있는 것이 우리 짧은 삶이다. 타인의 욕망으로 공허한 시간을 보내기엔 우리 삶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나이와 꿈은,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처럼 진정한 꿈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보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버린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더욱 집중적으로 탐구가 필요하다.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정말 나의 꿈이 무엇인지 고민하여야 한다. 꿈을 좇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꿈을 고민하고 또 진지하게 열정을 쏟는 사람에게 부러움과 함께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과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실천해야만 한다. 타인의 욕망을 버리고 내 적성과 내 가치관, 내 열정을 쏟을 진정한 나의 꿈에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노력을 무의미하게 낭비하지 말자. 오늘은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다. 나중으로 미루다간, 정말로 늦어버릴지 모르니까.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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