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먹어야 하나? 어차피 다 아는 맛…” “아는 맛이라 참을 수가 없는 거다!”
“꼭 먹어야 하나? 어차피 다 아는 맛…” “아는 맛이라 참을 수가 없는 거다!”
  • 박신영 기자
  • 승인 2014.06.13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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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다이어트



25세를 기점으로 체질이 조금 바뀐 것일까. 여자는 20대 중반부터 노화 가속도가 심해진다더니 틀린 말도 아닌 모양이다. 이제 슬금슬금 눈에 띄는 얼굴의 실금들이나, 한층 퀴퀴해진 눈 밑, 하루만 밤새면 이틀은 푸석푸석한 피부. 몇 살 더 어린 때라고 해서 뭐 그렇게 생그러웠나 싶긴 하다만은,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나빠져 가는 것을 보면서, 아 노화의 힘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오들오들 떨게 된다. 가장 큰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살, 살이다. 그렇다. 나는 현재 내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상태다. 겨우 살이 좀 붙은 것에 체질이니 노화니 들먹거리는 이유는, 이렇게 먹는 족족 살로 가는 건 내가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나는 ‘모태마름’.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찌고, 때로는 미용을 위해 밥을 굶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던 그런 사람이었다. 몇몇 여자애들은 날 부러워하고, 어르신들은 날 안쓰러워하며, 몇몇 남자들은 ‘여자들은 삐쩍 마른걸 보고 예쁜 줄 안다’며 은근히 핀잔을 주기도 하던, 그런 종족. 모태마름. 불과 몇 년 전 가장 말랐을 때와 비교하면 한 8kg 정도 불었나. 지방 8kg이면 결코 작은 부피가 아니다. 운동이라고는 가끔 하는 스트레칭이나 맨손체조가 전부니까, 불어난 8kg에 근육이 포함되어 있을 리 만무하고, 그 8kg은 거의 100% 지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운동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늘 말라있었으니까,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전과 같이 먹고 움직이는데도 갑작스럽게 살이 오르니, 당황할 새도 없이 금세 ‘지방’ 8kg이 쪄버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다들 내 팔뚝 살이나 허벅지를 보면서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야 너에게도 이런 게 생기다니, 말하며 내 군살을 잡아당기는 모습에서 킬킬거리는 뉘앙스가 묻어난다. 약간 고소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찐 것은 사실이지만 누군가 내 몸매를 보고 고소해할 만큼 뚱뚱하진 않지 않나 한참 갸웃거렸지만,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모두들 뚱뚱해서 다이어트 하는 것이 아니라, 날씬하지 않아 다이어트 하는 것임을. 이제 걱정과 근심 없던 모태마름의 영역에서 튕겨져 나와, 평생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평범한 여인들의 고민에 동참하는, 아니 동참해야만 하는 정상체중의 영역(정상체중의 중후반부는 미용체중으로 보면 다이어트를 요하는 체중이다)으로 포섭되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고소할 수 있겠다 싶더라.







내 몸에 문제의식을 느낀 건 매일 아침 마주하는 뱃살, 그 악마 같은 놈 때문이었다. 사실 한동안 누군가 내게 살쪘다고 말하는 것이 칭찬처럼 들렸다. 그만큼 나는 워낙 말라있었고, 일부러 그런 마른 몸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고 오해받는 것에 제법 질려있었던 모양이다. 간혹 어르신들 중에는 덮어놓고 꾸지람부터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어딜 가나 얘 너무 말랐다, 너무 말랐다. 거의 인사말처럼 들어왔던 것 같다. 말랐다는 말이 칭찬도 아닌데, 계속 들으면 역시 기분이 조금 그렇다. 물론 편한 점은 있었다. 보통의 여자애들이라면 전문가처럼 꿰고 있는 칼로리 정보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24시간 한밤중이든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먹어도 된다는 점? 마른 몸이 콤플렉스는 아니었기 때문에 (마른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나, 단지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크게 불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살이 조금 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물론 뭔가 노력해봐야지 결심할 만큼 뚜렷한 희망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뭐, 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차에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조금 오르기 시작했다. 건강해 보인다든지, 볼에 드리운 핼쑥한 그림자가 사라진다든지 하는 점이 매우 흡족했다. 너무 말랐다는 말도 점차 자취를 감췄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거저 이뤄진 결과에 굉장히 횡재한 기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냥 그 뿐 별 생각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살이 찌기 시작했다는 점에 조금이라도 의구심을 가졌다면, 예전처럼 야식을 폭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지도 몰랐을 텐데. 그리고 하루하루, 나는 조금씩 무거워져 갔고, 전과 달리 몸이 좀 무겁군, 하고 깨닫게 될 즈음의 나는, 이미 사진을 찍으면 팔뚝이 얼굴만 하게 나오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진이 잘못 나왔네 애써 외면해 보았지만, 뱃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마주하는 공복의 배가 더 이상 홀쭉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뱃살 때문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허리가 안 맞거나, 너무 뱃살이 부각되거나 한다는 등의 이유로, 나는 가뜩이나 가짓수가 많지 않은 옷장의 옷들 중에서도 굉장히 한정된 옷들만을 주구장창 입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제야, 뒤늦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생애 최초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단 한 번도 살찌는 것으로 딱히 고민해 본 적 없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솔직하게, 아주 솔직하게, 나는 살찐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살을 안 빼지? 자기가 뚱뚱한 걸 모르나?’ 하고 쉽게 생각하고 말았다. 가능하면 비난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들을 쉽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크게 반대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남에게 비난 받을 죄는 결코 아니지 않은가. 뚱뚱하다는 것은 타인에게 비난받을 이유가 못된다. 타인에겐 그런 권리가 없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의 살에 가려진 청춘과, 아름다움이 안타까웠고, 그를 방치하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다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겉으로는 아닌 척 하고 있었지만.

살찐 친구가 다이어트 작심삼일 만에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에 무너져 연이은 폭식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그 친구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줄곧 그녀가 살쪄있다는 이유로 받는 부당한 대우와,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감을 잃어가는 모습들이 안타까웠었다. 이목구비를 뜯어보면 모난 곳 없이 하나같이 예쁜데, 한창 빛날 20대를 우중충하게 써나가고 있다는 것이 답답하고 또 아까웠다. 친구가 날씬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칭찬도 해보고, 한 사이즈 작은 옷 선물도 하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응원을 다 했었다. 그렇지만 금방 그만두고 마는 친구의 의지가 못내 야속하고, 조금은 화도 나고 그랬다. 솔직히 ‘지금 그 몸에, 그게 넘어가니?’ 같은, 나쁜 생각도 사실 조금 했었다. 내가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거나 하면, 다이어트에 실패한 그녀는 항상, 너는 다이어트 해본 적도 없으면서! 하고 눈을 흘기곤 했다. 나는 속으로, 글쎄 나 같으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자신했었다. 역시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우정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이어트가 내 일이 되고 나니까, 피부로 느끼는 진리가 하나 있다. 역시, 사람은 겪어보기 전엔 결코 모른다. 결코. 남의 일이 쉽게 느껴진다고 정말 쉬운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꾸만 실패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내 일이 되어봐야 그 이유가 정말 어떤 크기인지 실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 보다, 단 것을 참는 게 힘이 든다. 다이어트를 성공한 여자 연예인이었던가. ‘꼭 먹어야 하나요? 어차피 다 아는 맛인데.’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냥 ‘그래 맞아!’ 하고 넘어갔었는데, 다이어터가 되고 나니, 그게 얼마나 분개할 만한 망언인지 알겠다. 내가 모르는 맛은 안 먹고도 살겠는데, 아는 맛이라서 참을 수가 없는 거다! 서러운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도가 세진 않지만 나름대로 계획을 짜서 운동과 식이를 병행하고 있는데, 내 도시락을 보면서 이렇게 굶기만 하니까 문제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 맛없는 걸 먹는 것도 서러운데, 무식하게 살 뺀다고 혼까지 난다. 그들은, 세끼 다 이렇게 먹는 건 아니에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쯧쯧 혀 차는 소리만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진다. 억울하고 서럽다. 단 것을 먹고 싶은 욕망에 정신이 아득해 온다. 다이어트를 안 할 때는 주전부리 정도 끊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했었다. 그래, 당연히 어렵지 않았다. 왜냐면 그때는 점심이 두부랑 닭가슴살, 양상추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왜 군인들이 밖에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초코파이에 열광하겠는가. 밖에서는 몸 생각한다고 탄산음료는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도, 아마 군대에서 탄산음료 마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자 있으랴. 물론 나는 군인이 되어 본 적 없어 모르겠지만, 비슷한 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혹독한 다이어트였다. 과거형으로 쓰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초반 엄격한 식이조절 기간이 끝나고 이제는 조금씩 먹고 싶은 것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초코칩 쿠키 한 조각에 아찔하게 행복해진다. 이제 평생,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해 쉽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혹여 그 도전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결코 그 도전을 한심해하거나 비웃지 않으리라. 짧은 다이어트였지만, 여러 가지 느낀바가 많았다. 모든 것은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을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부로 타인의 일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어 보니 살이 찐다는 것은 정말 서러운 일이더라. (예전에는 그저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루 빨리 한 알만 먹으면 살 빠지는 약이 개발되었으면 (진심으로) 좋겠다. 가능하면 펀딩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도 다이어트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결과에 상관없이 응원을 보낸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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