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에 부러진 손목, 연탄 사려면 인력시장이라도 나가야 하는데…”
“빙판길에 부러진 손목, 연탄 사려면 인력시장이라도 나가야 하는데…”
  • 승인 2012.01.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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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탐방> ‘연탄가정’의 힘겨운 겨울나기-4: 중구 약수동 서울성곽 마을

무게 3.6㎏, 4600㎉의 열량을 뿜어내는 막강 화력의 연탄.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연탄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기름과 가스보일러는 꿈도 못 꾸는 극빈층들에게 연탄 2장은 하루 24시간 동안의 듬직한 동반자다. 특히 비탈진 산동네에 거주하는 영세민들에게 연탄은 ‘검은 보석’과도 같다.
저소득층의 생활비에서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다. 바깥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이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급경사의 산비탈을 등에 이고 사는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은 한 걸음 더 일찍 찾아온다. <위클리서울>은 ‘연속기획’으로 산동네 주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호엔 중구 약수동을 가로지르는 서울성곽길 인근의 산비탈 마을을 찾았다.





한 두 장씩이라도 선물 받을 수 있다면…

혹한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 산중턱이라 칼바람을 직접 맞아야 하는 대도시 달동네 주민들의 겨우살이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약수동 서울성곽길 인근의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약수동 언덕에 위치한 성곽길은 오르기까지의 경사가 급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 특히 고령의 노인들에겐 늘 고민거리다. 이동에도 불편을 겪지만, 겨울철 이들에겐 황금마차나 다름없는 연탄배달차도 감히 다가오기를 꺼려한다. 배달차가 오더라도 성곽길에 차를 세운 뒤 길 옆에 연탄을 내려놓고 가버린다. 주민들은 리어카를 끌고 가 몇 번이고 연탄 옮기는 일을 되풀이해야 한다.

“여기도 지대가 높아서 배달을 잘 안하려고 해요. 경사가 급해서 눈이 오면 차도 못 다니죠. 성곽길로 차가 다니는데, 성곽길 평평한 지대에 연탄을 두면 우리가 리어카를 끌고 거서 직접 날라요. 장당 800원씩(한 장에 500원) 준다 해도 집까지는 배달을 안 해주거든요. 게다가 우리가 800원씩 줄 상황도 못되고…. 차가 다니기도 힘들고, 사람 다니기도 불편한 곳이죠. 연탄 때는 것을 떠나 연탄 옮기는 것도 일입니다.”

김모(65) 씨는 겨울이면 먹을거리도 연탄처럼 쌓아둔다고 했다. 눈이 올 때를 대비한 일종의 비상식량인 셈이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도 아니니, 눈이 많이 쌓이면 이동하기가 불편해요. 저처럼 나이든 사람들은 바깥출입이 힘들죠. 라면 같은 비상식량을 늘 쌓아두어요. 몇날 며칠을 집에서만 보내야하는 날도 있거든요.”





“가끔 예정에 없는 손님들이 오곤 하는데, 마실 것도 음식도 필요 없으니, 연탄이나 몇 장씩 사왔으면 좋겠어요. 하루 2장 땔 거, 3장씩 때면 추위 걱정은 덜 하겠죠. 문제는 연탄도 대량구매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성곽 비탈, 아주 오래된 기와집 30여채가 닥지닥지 붙어 앉은 곳의 비좁은 골목엔 며칠째 치우지 못한 연탄재와 쓰레기가 어지럽게 쌓여있다. 대부분이 30도를 넘는 급경사길이 눈과 얼음으로 빙판길이 돼 차량은커녕 사람도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다.

연탄도 연탄이지만 기름배달 역시 웃돈을 얹어준다 해도 언감생심이다. 연탄배달이 늦어져 급한 사정에 기름난로를 때려다 봉변을 당한 박모(57) 씨. 박 씨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서 들고 올라오다 넘어져 손목이 부러지기도 했단다.





“연탄배달 예약은 해뒀는데, 좀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이웃집에서 배달 주문할 때 같이 했어야 하는데 때를 놓쳤어요. 요즘은 애들 시켜서 며칠에 한 번씩 기름을 사와요. 기름 두통을 양손에 들고 집까지 올라오면 숨이 턱에 찹니다. 게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한두 군데 부러지는 건 예삿일이에요. 전 집 앞에서 넘어져 왼쪽 손목이 부러졌죠. 갑갑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박 씨는 이 때문에 일용직 일자리도 잃고 한 달 가까이 집에서 쉬고 있다.

“손목이 나으면 인력시장에라도 가봐야 하지만 새벽 빙판길이 겁나 나가지도 못해요. 어두워지면 아이들에게 바깥심부름도 안 시킵니다.”

박 씨는 이곳에서만 30여 년을 살아왔지만 매년 찾아오는 겨울이 낯설기만 하다.
“추우면 없는 사람이 더 힘든 것 아니겠어요. 올 겨울엔 제발 눈이라도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엔 하도 추워서 바깥 화장실이 얼어붙기도 했어요. 그래서 요강을 사용했죠. 수도관도 곳곳이 얼어 터져 밥도 제대로 못 해먹었습니다.”




불우이웃이라는 서글픈 인생

온 동네를 휘감는 매서운 바람. 대낮인데도 한두 노인만 눈에 띌 뿐 인기척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집들은 대부분 굳게 문을 닫은 채이고, 그 너머에 몇 명이 사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적막감이 감돈다. 마른 기침소리가 담장을 넘어온다. 주모(65) 씨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쿨럭쿨럭 바튼 기침을 해댄다. 난방이 안 돼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아궁이가 또 막혔어요. 난방이 제대로 안 돼요. 수리할 돈 있으면 가스보일러 들였겠죠. 방이 좀 차가워도 전기장판이 있으니 그럭저럭 견뎌냅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애프터서비스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행히 주 씨는 지난 연말 연탄을 지원받기도 했다. 올 겨울을 나기 위해 미리 사두었던 연탄이 남을 정도다.

“불우이웃이라는 서글픈 인생이 돼 연탄 몇 장을 얻었죠.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 내고 살고 있어요. 여기서 나가게 되면 아무 곳도 갈 데 없는 인생이죠. 노숙자 안 되려면 아끼는 수밖에 없어요. 위험하긴 해도 그저 연탄이 가장 싸고 좋아요. 가스나 기름보일러 죽을 때까지 못 땔 겁니다.” 

홀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모 씨도 ‘겨울나기’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에게 연탄은 겨울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도시가스를 사용할 여력은 없다. 거동이 불편한 몸이지만 연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탄을 때는 몇 가구에 주위에서 도움을 줬어요. 저는 300장을 받았어요. 기름을 때는 집에도 달동네 아픔을 아는지 배달원들이 웃돈을 받지 않더라고요. 올 겨울나기, 지난해처럼 눈만 많이 오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 없을 것 같기도 한데….”





몇 해 전 모은 돈으로 도시가스 들일 생각도 해봤다는 이 씨. 하지만 설치비용이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도시가스 배관을 깔려면 수백만원이 든다잖아요. 10년 전에 이사와 계속 연탄을 때고 있어요. 얼어 죽지 않으면 되니 불만은 없습니다. 산꼭대기에 살면서 밑에 사람들과 똑같이 지내려 하는 것도 욕심이죠.”

이 씨는 기회만 된다면 차라리 시골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도시에선 돈이 많이 들어요. 더워도 돈, 추워도 돈이에요. 하지만 시골은 달라요. 조금만 부지런하면 크게 돈 들 일이 없잖아요. 산책하면서 장작 될 만한 것들 줍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아궁이에 장작불 지피잖아요. 산에 들에 널린 게 나무 조각들이니, 사실 그게 돈도 안 들고 좋죠.”  

연탄 지원은 무료쿠폰이나 기업후원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극빈층이다 보니 난방비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겨울에만 반짝 하는 일회성 행사에 그쳐 지원이 편중된다는 지적도 있다.





“몇 해 전엔 10가구 합해서 수천장을 지원받기도 했어요. 그땐 쌓아뒀다가 버리는 연탄이 부지기수였어요. 대충 쌓아놨다가 무너지는 바람에 깨져서 못 쓰거나 봄비를 맞고 눅눅해져 버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연탄도 유통기한이 있어요. 오래되면 못쓰거든요. 그래서 연탄 때는 집들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주문을 하는 거잖아요. 공장에서 갓 생산한 것들이죠. 중간에 주문한 연탄들은 질이 안 좋아요. 오래 못가죠.”

연탄을 보관할 장소가 적당치 않아 겨울이면 2회에 걸쳐 연탄을 주문한다는 장모(67) 씨는 그저 폭설이 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연탄도 몇 장 안 남았어요. 꼭대기라 눈이라도 오면 배달도 잘 안 해 주거든요. 어떻게 견딜지….”    

장 씨는 매일 일기예보를 빼놓지 않고 본다고 했다.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라디오나 TV를 항상 틀어놓아요. 일기예보가 자주 틀리던데, 꼭 한파나 눈이 온다는 예보는 맞아 떨어지더라고요. 추워진다는 소식 들리면 비상입니다. 물 받아놓고 연탄은 아궁이 위에 계속 올려놓아요. 수도가 얼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여름과 겨울만 되면 날씨 걱정에 여념이 없다는 장 씨는 “결론은 이사를 가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그동안 수급비 받으며 일을 해왔거든요. 일용직도 해보고 수위도 해봤어요. 요즘은 건물 청소를 나가고 있는데,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은 돈이 모이고 있어요. 허름하더라도 날씨 걱정 없는 집에 살다가 죽는 게 소원이지요.”

어느덧 성곽 뒤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해가 저물 때면 연탄 가정들의 일손은 바빠지기 마련이다. 연탄을 갈아 넣어도 기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비어가는 연탄 창고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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