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따듯한 공감으로 삶을 잘 이끌어 봐!
얘들아, 따듯한 공감으로 삶을 잘 이끌어 봐!
  • 한국어교육신문 김옥순 미국 통신원
  • 승인 2019.05.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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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한국학교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애틀랜타 한국학교 졸업식. 필자 김옥순 애틀랜타 한국학교 교사.
애틀랜타 한국학교 졸업식. 필자 김옥순 애틀랜타 한국학교 교사(앞줄 왼쪽 두 번째).

연일 졸업 소식이 들려온다. 몇몇 지인들은 자녀들이 졸업했다고 만면에 웃음꽃이 흐드러졌다. 저마다 또 하나의 고지를 넘었기에 어깨가 가벼운지 한껏 달떴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라니! 나도 그렇다. 5월의 신록보다 더 푸른 2세들에게 애틀랜타 한국학교의 졸업장을 나눠주면서 기쁨, 행복, 뿌듯함이 뒤엉켰다. 그러고 보니 질풍노도의 고등학생들과 어우렁더우렁 울고 웃던 1년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흘러갔다. 경황없이 녀석들을 떠나보낸 이튿날 아침에야 와락 서운한 마음이 달려든다.

“아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더욱 공감해줄 걸…!”

녀석들과 엮은 추억의 편린들을 소환해 글이라도 써야 그 서운함이 가시려나!

지난 토요일, ‘졸업을 맞기까지 꼬박 10년을 간절히 기다렸다’는 녀석들이 마침내 졸업식을 치르니 뼛속까지 시원했을까? 교실로 돌아오더니 아이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시끌벅적하다.

“어둠 속에선 우리면 충분해…”

연신 방탄 소년단의 노래를 부르며 기쁨의 도가니에 풍덩 빠졌다. 마지막 종례 시간에 말문을 열다가 나는 울컥했다. 삽시간에 슬픈 기운이 내 영혼을 덮쳤다.

“1년 동안 선생님 말씀 잘 들어주어서 고맙고, 최선을 다해주어서 고맙…”

굵은 눈물방울이 양 볼을 타고 줄줄 말을 잇지 못하자, 흥분으로 요동치던 교실에 갑자기 어둠보다 무거운 침묵이 내렸다. 눈치 빠른 녀석들이 열 지어 나와서 차례차례 나를 껴안아 주는데, 유독 속이 깊은 영훈이는 몸이 으스러지도록 나를 안더니 한참을 붙박이처럼 서 있었다. 따듯한 기운이 내 안에 가득 찼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더니, 무릇 사람도 한가지다. 올해 졸업생들은 2년 전에 내가 가르쳤던 소나무 반 학생들이다. 그땐 16명이 한결같이 세상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던 천둥벌거숭이였다. 토요일 아침 16명이 출석하면 종알종알, 이른 봄날 나뭇가지를 오가며 마음껏 재잘대는 새들의 합창 같았다. 수업 중에 집중은커녕 여기서 들썩 저기서 들썩, 이 녀석이 한마디 툭 던지면 저 녀석이 맞받아치고 일제히 깔깔깔. 조금만 틈을 주면 수업 분위기가 금세 흐트러지니, 급기야 쉬는 시간을 없애고 내리 수업만 했다. 한국학교 교사 10여 년이 넘도록 그렇게 산만한 학급도 처음이고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것도 처음이었다. 심지어 ‘후유, 이러면 못하지, 한국학교를 그만둬야겠네!’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저마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은 감정이 울퉁불퉁,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들이 졸업반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세상에 거저는 없는 법! 시간이 그냥 흐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숙성시켜 놓았다. 그들이 내게 다시 왔을 때는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기본을 지킬 줄 아는, ‘무르익은 사춘기’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까? 나무가 황홀하게 불타오를 때 가장 아름답듯이 사춘기의 절정에 이른 녀석들. 또한 아이들은 종종 멋진 광경을 연출해 나를 황홀경에 빠트렸다. 몸과 마음을 한데 모아 운동장을 누비며 가을 운동회를 역동적으로 이끌던 일,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만세운동 퍼포먼스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자유 수호에 목숨 건 독립투사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해냈다. 지난 1년을 더듬어보니 녀석들의 활약이 참으로 대단했다. 그 충만했던 시간은 녀석들과 내 영혼에 살이 토실토실 오르는 시간이었다.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는 침으로 서로의 몸을 적신다”

장자의 역설처럼 아이들도 나도 온몸의 물기를 짜내 서로에게 적셔주던 시간이었다. 만능을 요구하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학업에 지친 아이들, 힘든 이민 길 위에서 등짐 지고 타박타박 외롭게 걸어가는 낙타 같은 나. 맞다. 우린 서로의 꿈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도록 온몸의 물기를 한방울이라도 더 짜내 힘껏 축여주며 응원하던, 그런 돈독한 관계였다.

‘이승에서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라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유언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2세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무기이며, 바로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일 것이다.

외롭고 휑한 내 마음을 읽어내, ‘우리도 알아요. 선생님의 마음을’이라고 외치며 뼈가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공감으로 화답해 준 해바라기반 아이들아! 인생길 누구를 만나든 따듯한 공감으로 주변을 환하고 밝게 만들며 당당하게 삶의 자리를 찾아가거라!

 

필자 김옥순은 한국어교육신문 미국 통신원이다.
미국 이민 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학생들에게 논술을 지도했다. 2005년 10월 도미, 미국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로 이민 온 이래, 주중에는 Precise Electric LLC에서 General Manager로 일하고 주말에는 애틀랜타 한국학교에서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2010년 본국의 백범 김구재단이 주최한 재미 한국학교 교사 대상 ‘백범일지 교육계획안 공모전’ 입상을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2년 6월 미주중앙일보가 주최한 중앙신인문학상(수필 : 네가 있어 난 행복해)을 수상하면서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애틀랜타 동포사회를 향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애틀랜타 미주 중앙일보에 3년간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저서로 『나는 오늘도 미국 이민을 부추긴다 : 미국 교육이민 성공보고서』(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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