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한국학교 설날 잔치... "교육은 힘이 세다"
애틀랜타 한국학교 설날 잔치... "교육은 힘이 세다"
  • 한국어교육신문 김옥순 미국 통신원
  • 승인 2019.02.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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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세대와 2세들이 함께 맞는 새해... 교사들과 4백여 명의 학생들 세배, 어른들은 덕담
애틀랜타 한국학교 2019년 설날 행사 장면. (사진제공 : 애틀랜타 중앙일보)
애틀랜타 한국학교 2019년 설날 행사 장면. (사진제공 : 애틀랜타 중앙일보)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 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애틀랜타 한국학교에서 설날 노래를 부르며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을 쇘다. 이 자리에는 애틀랜타 한국학교 이사장을 비롯해 김영준 총영사, 노인회 회장 등 동포사회 여러 어르신이 참석했다. 이민 1세대와 2세들이 함께 맞는 새해, 두 세대가 한데 어우러져 몽글몽글 피워내는 함박웃음은 붉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밝고 따뜻했다.

설날 잔치가 열린 지난 토요일, 교사들도 아이들도 한껏 달떴다. 교사들과 4백여 명의 학생은 형형색색,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무대 위에 앉아 계신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초급반부터 반별로 열을 지어 세배하고 한국의 지폐 천 원 한 장을 세뱃돈으로 받고 덕담도 들었다. 한국학교에서 설을 맞는 어르신들만큼 세배를 많이 받은 분들이 또 있을까? 학생들과 교사들까지 포함해서 4백여 명이 넘는 이들이 세배를 드렸으니, 어르신들의 얼굴이 이른 봄날 펑펑 터진 벚꽃처럼 환했다. 사실 세배를 앞두고 교사들은 일제히 긴장한다. 학생들이 세배를 엉터리로 할까 봐 세배를 마치는 순간까지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래서 교사들은 매년 설을 앞두고 세배하는 동영상을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연습시킨다. 그런데도 실전에선 순서가 뒤죽박죽 엉망이다. 졸업반, 사춘기 학생들은 매년 세배할 때마다 허리를 엉거주춤 바닥에 고개를 푹 박곤 하는데 공경을 담아 예의를 드러내는 조상들의 예법이 낯설고 쑥스러운 것이다.

“학생들이 세배를 엉터리로 해서 참석하신 어른들 뵙기 민망했어요! 올해는 미리 교실에서 연습시키세요!”

교장 선생님의 당부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녀 2주 전부터 세배 연습을 수차례 시켰다.

“졸업반인 여러분이 세배를 엉터리로 하면 어린 동생들한테 부끄러운 일이에요!”

으름장을 놓았더니 강펀치였나 보다. 올해는 실전에서 아주 잘했다. 역시 교육은 힘이 세다.

덕담도 듣고 세뱃돈까지 받았으니 1라운드를 마쳤다. 여전히 어른들은 가슴 뻐근하고 학생들은 신명 났다. 학부모회에서 각반 룸 맘(새 학년도가 되면 각반에서 학부모 대표 한 명을 뽑아서 행사 때 학급을 위해 제반 준비를 함) 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떡국을 끓였다. 올해는 유독 우리 반 학생들이 떡국을 쩝쩝거리며 잘 먹었다. 현우는 두 그릇, 장원이는 세 그릇을 뚝딱 비웠는데 이유가 있다. 하루 전날 룸 맘께서 밤새도록 사골을 고아서 그 국물에 떡국을 끓였으니 그 맛을 여느 떡국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애나 어른이나 입맛은 똑같다. 나도 단숨에 한 그릇을 비웠으니 한국학교 교사 12년 차인 올해 떡국이 단연 으뜸이었다. 음식도 시간과 정성이 깃들어야 깊은 맛이 난다.

 

애틀랜타 한국학교 2019년 설날 행사 장면. (사진제공 : 애틀랜타 중앙일보)
애틀랜타 한국학교 2019년 설날 행사 장면. (사진제공 : 애틀랜타 중앙일보)

“배가 불러 죽겠어요!”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아이들을 설날 잔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전통놀이 체험장으로 우르르 몰고 갔다.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던지기, 굴렁쇠 굴리기, 팽이치기, 씨름 등을 체험하도록 체육관에 세팅해 놓았는데 우리 반 학생들은 한국학교를 10여 년이나 다녔으니 설날의 전통놀이는 죄다 섭렵했다. 이들의 시선을 끈 것은 오직 씨름. 남녀 학생 모두 씨름판을 포위하고 섰다. 상대와 순번이 속속 정해지고 선수들이 입장하는데 평소 한량 같은 민혁이가 심상치 않았다. 민서와 한판 붙었는데 두 선수의 얼굴에 비장미가 흘러 넘쳤다.

서로 밀고 당기며 상대방의 동작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라니, 우리 조상들은 씨름이라는 흥미진진한 운동 경기를 정말 잘도 만들었다. 틈만 나면 책상에 궁둥이를 찰싹 붙이고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요즘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나약하다. 스마트 폰으로 대화하고 스마트 폰이 이 세상 전부이니 친구들과 어우러지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아이들이 샅바를 메고 신체를 접촉하니 친밀감도 생기고 서로 존중하며 몸동작으로 예의를 지키며 상대를 이기려고 전력투구하면서 인내하는 모습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씨름 경기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후세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정신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런지. 몸으로 힘을 겨루면서 도전하는 가운데 순발력, 판단력, 투지를 기르고 몸과 마음을 단련해 한 시대를 책임지는 주역이 되라고 뜻이리라.

부지불식간 첨단 문명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전통을 덮치고 인간의 존재까지 위협하는 21세기의 민낯을 간파해서일까? 편리하고 신속 정확한 기계문명을 누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나는 늘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아이들의 미래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도 육아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던 동료의 우려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사이버 세계가 현실의 공간보다 편안하고 익숙한 우리 아이들을 구할 최후의 보루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 조상들이 전해준 ‘우리 것’이 아닐까? 전통 음식인 떡국 한 그릇의 나눔과 끈끈한 사랑이, 세배와 덕담 속에 공경과 넉넉한 품이, 전통 놀이 속에 이물감 없이 한데 어우러져서 하나가 되는 일체감이 깃들었다. 그러고 보니 설날 잔치 속에 인생의 핵심이 다 들어있다.

이국땅 애틀랜타 한국학교를 비롯해 동포사회 곳곳에서 설날 잔치를 열고 떡국을 나누고 덕담이 오간 것도 다름 아니다. 정다운 고국, 그리운 부모 형제들을 향한 출구 없는 그리움도 그리움이지만 더 나아가 2세들에게 웃어른을 공경하고 전통문화 속에 깃든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라는 메시지였다.

[관련 보도] 미국 교육부가 인정한 애틀랜타 한국학교 / YTN KOREAN

 

필자 김옥순은 한국어교육신문 미국 통신원이다. 미국 이민 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학생들에게 논술을 지도했다. 2005년 10월 도미, 미국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로 이민 온 이래, 주중에는 Precise Electric LLC에서 General Manager로 일하고 주말에는 애틀랜타 한국학교에서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2010년 본국의 백범 김구재단이 주최한 재미 한국학교 교사 대상 ‘백범일지 교육계획안 공모전’ 입상을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2년 6월 미주중앙일보가 주최한 중앙신인문학상(수필 : 네가 있어 난 행복해)을 수상하면서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애틀랜타 동포사회를 향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애틀랜타 미주 중앙일보에 3년간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저서로 『나는 오늘도 미국 이민을 부추긴다 : 미국 교육이민 성공보고서』(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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